2018-2 송성훈(노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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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이름 = 송성훈[1]
  • 한자 = 宋星勳[2]
  • 영문 = Song Seong Hun
  • 전공 = 노어과
  • 소속 = 한국외국어대학교[3]
  • 메일 = songsunghoon1999@naver.com

상세정보

소개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학부생 송성훈입니다.

나의 이야기:

학력

기간 내용 학위
2018. 3 ~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전공 학부생
2015. 3 ~ 2018. 2 충원고등학교 졸업
2014. 3 ~ 2015. 2 충주 신명중학교 졸업
2012. 3 ~ 2013. 12 양지중학교 학생
2006. 3 ~ 2012. 2 슬기초등학교 졸업

관심주제

주제 내용 비고
언어 러시아어, 영어
역사 현대사 20C
이민학 해외동포 고려인

자기소개

저는 1999년 6월 12일 시흥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크게 없었고, 2003년에 안산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저에게 큰 기대를 거셨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영, 농구, 태권도, 수학, 영어, 가정학습, 미술, 피아노 등 수많은 학원에 저를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고, 유일하게 미술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유치원을 다닐 때와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미술대회에서 수상을 하였고, 부모님께서는 자연스럽게 미술에 관심이 쏠리셔서 저를 미고로 전학시키기 위해 도심가에 있는 나름 이름 있는 미술학원에 보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림 그리는 것이 나름 좋았는데 손이 금방 더러워지고 여러 시간 동안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있으면서 허리도 아프고 해서 점점 그림 그리는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끝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방학 때는 아마 오전 9시에 가서 오후 9시까지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부모님께서 안산에서 충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저 또한 영문을 모른 채 다니던 미술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사 가기 몇 달 전부터 미국 드라마나 영화 등 약간의 사대주의 비슷한 것에 빠져있어서 영어 하나만 다른 과목보다 월등히 잘했고, 중학교 2학년 마지막 시험 때 다른 과목의 성적은 밑바닥에 가까웠지만 영어만 특이하게 순위권에 드는 성적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충주에 있는 엄정면이라는 인구 1만도 채 되지 않는 시골에서 살게 되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2km쯤 떨어진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을 할 수 없으니 그저 남들처럼 공부에만 집중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가 작아서 한 학년의 수가 30명이 채 되지 않고 그마저도 절반이 학교를 잘 나오지 않는 축구부 아이들이라 약간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중학교 3학년을 마쳤습니다. 그 이후 시내에 있는 나름 중상위권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만들었지만, 거리 문제 때문에 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충주에는 평준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성적이 밑바닥인 아이들이 제가 들어간 고등학교에 많이 들어왔는데, 어린 나이에 담배를 피우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등 굉장히 불량한 아이들이 많았고 무려 몇 달 만에 전교생의 20%가 퇴학당하거나 자퇴를 했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들과는 달리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었기에 난데없이 모범생 취급을 받았고, 입학할 시에 중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았기에 학교에서 따로 관리하는 상위권 그룹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알 수 없는 허영심에 거절했던 것 같았고, 성격이 많이 소심한 편이여서 요즘 대학입시 전형 중의 하나인 학생부 종합 전형의 자기소개서 등을 채울만할 동아리나 단체 활동 등을 하나도 하지 않아 선생님들로부터 좋지 않은 소리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고, 학교의 인원의 100%가 자기소개서를 써서 대학을 갔으니 다들 제가 대학입시를 망칠 거라고 여겼고, 그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제가 한국외대에 원서를 쓰겠다고 했을 때 굉장히 화를 내셨던 기억이 납니다. 운이 좋았는지 자기소개서를 쓰지 않는 전형으로 한국외대에 들어오게 되었고,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면증이 심해져서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학교에 가고 그러니 하루 종일 몸이 피곤하고 결국 모든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여태까지 살아온 세월 중 가장 게으르고 의미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가 끝나면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때까지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자취방으로 이동한 후 누워있는 데 쓰기 때문에 특기나 취미는 사실상 없고, 굳이 취미를 있다고 말하자면 인터넷 서핑이나 음악 듣기 그리고 가끔씩 영화를 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사업을 성공하는 방법, 외국어를 빠르게 습득하는 방법 등 많은 관심사가 있었지만, 지금의 저는 알 수 없는 피로감과 앞으로 군 앞으로 군대를 가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모든 의욕이 사라져 그 많던 관심사도 없어졌습니다. 앞으로의 진로 계획은 일단 1학년을 마치고 나서 내년 1월에서 4월 사이에 군 입대를 할 예정입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상병을 달게 되면 개인 자유 시간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에 영어와 제 전공 언어를 틈틈이 공부할 것이고, 제대를 하고 나면 이중 전공으로 융복합 소프트웨어를 선택하여 전공과목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 최종적으로 자신만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입니다. 정말 꿈같은 목표입니다. 그리고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을 말해보자면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겠지만, 지난 정부 때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가 이중국적 논란으로 사퇴하였던 김종훈 과학자입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가난, 형편없는 영어실력, 부모님의 이혼과 파탄 난 가정 등 수많은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김종훈 과학자는 ATM이라는 장비를 개발하여 1조 원의 재산을 가진 갑부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리다가 글로벌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분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아무것도 모를 초등학생이지만 굉장히 많은 감동을 받았고, 이후 고등학교 때 그분이 떠올라서 다시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된 뒤에 제가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사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항상 힘들 때면 내가 김종훈 과학자 보다 힘들었겠어?라는 생각을 내며 버티려는 노력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며칠, 몇 달 동안 실패만을 겪으면서 게으르고 한심하게 살고, 그렇게 사는 게 익숙해졌을 때 그분의 말 했던 “Don’t look back unless that is the direction you want to go"("네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면 그 길을 되돌아보지 마라“) 즉, 과거의 일을 한심하게 보냈거나 실패를 했어도 그것에 신경 쓰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자라는 말을 떠올리며 전날처럼 살지 말고 오늘은 새롭게 살자는 결심을 많이 하였습니다.

세계의 한민족 수강신청 이유

제가 세계의 한민족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외국 학생들도 같이 듣는 강의이기 때문에 교수님이 조금 쉽게 수업내용을 설명하셔서 수업내용을 이해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것 외에는 수강신청 전에 세계의 한민족이 무엇을 하는 수업인지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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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도

각주

  1. 영어이름: Song Seong Hun
  2. 송나라 송, 별 성, 공 훈
  3. 한국외국어대학교 http://www.hufs.ac.kr/index.html
2018-2 세계의 한민족(서울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