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채 답사보고서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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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문학 콘텐츠

박물관에서 찾은 나의 호기심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을 한 해시계'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며, 세계 유일의 오목 해시계이다.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16년(1434년) 과학자인 장영실이천, 김조 등에 명하여 처음 만들었으며, 그 해 10월에 종묘 앞과 혜정교(惠政橋)에 각기 1대씩 설치했다. 그 후 조선 시대 말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궁궐과 관공서, 사대부 가옥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앙부일구는 오목한 구형 안쪽에 설치된 막대에 해 그림자가 생겼을 때 그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측정하는데, 해 그림자를 만드는 끝이 뾰족한 막대를 영침(影針)이라고 한다. 영침(시침)의 끝은 구의 중심이 되며, 막대의 축을 북극에 일치시켰다.

영침 둘레에는 시각을 가리키는 시각선이 세로로 그려져 있으며, 그 시각이 십이지신(十二支神)로 표시되어 있다. 특히 세종은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하여 시각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등 12지의 동물 인형을 그려 넣었다.

또 해외의 해시계는 평면모양임에 반해 앙부일구는 지구모양을 본떠 만들었다.[1]

호기심의 확장

홍순채_답사보고서_2018-1

네트워크 그래프


앙부일구로 시작한 나의 호기심은 앙부일구의 제작을 명한 세종으로 확장됐다. 조선왕조 제4대 왕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치며 훈민정음, 측우기, 앙부일구와 같이 백성에게 이로운 것들을 만들었다.

앙부일구를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조선의 발명왕 장영실이다. 농사를 주축으로 사는 당시 조선은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해야할 시기를 정확하게 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종은 조선만의 천문관측 기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도 당시 천문관측 기구를 만드는 일은 국가 기밀이었다.

조선에서 세종의 뜻을 이뤄줄 사람을 찾기 정말 힘들었을 때 장영실이 세종의 눈에 띄었다. 세종은 1421년(세종3년) 당시 노비였던 장영실을 명나라로 보내 선진 천문관측 기구를 보고 배워 오게 하였다.

조선으로 돌아온 장영실은 세종의 뜻에 따라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천문관측 기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1433년 혼천의 제작을 시작으로 1434년 앙부일구를 장영실이 만들었다. 또 자격루(물시계)와 1441년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까지 완성했다.

세종은 장영실에게 종3품의 벼슬을 내리고 노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세종이 해시계를 만든 장영실을 궁에서 쫓아낸 사연이 있다.

많이 아꼈던 장영실이지만 1442년(세종24년) 세종이 탈 가마가 부서졌다는 이유(불경죄)로 곤장을 맞고 궁궐에서 쫓겨나게 된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상아로 고급스럽게 만든 휴대용 앙부일구를 사용했다.

지식노드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앙부일구 세종 A는_B와_관련이있다
세종 장영실 A는_B와_관련이있다
장영실 앙부일구 A는_B를_만들었다
앙부일구 (조선 후기)휴대용 앙부일구 A는_B의_과거 모습이다
(조선 후기)휴대용 앙부일구 경기도 박물관 A는_B에_보관되어있다
앙부일구 십이지신 A는_B와_관련이있다
세종 훈민정음 A는_B를_만들었다
세종 장영실의 불경죄 A는_B와_관련이있다
장영실 장영실의 불경죄 A는_B와_관련이있다
장영실 종3품 A는_B로_신분상승 되었다
장영실 측우기 A는_B를_만들었다
장영실 자격루 A는_B를_만들었다
장영실 혼천의 A는_B를_만들었다
김조 앙부일구 A는_B와_관련이있다
이천 앙부일구 A는_B와_관련이있다
장영실 김조 A는_B와_관련이있다
장영실 이천 A는_B와_관련이있다

참고자료



  1. 앙부일구, 네이버 지식백과,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는 첨단 과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