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진 답사보고서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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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문학 콘텐츠

박물관에서 찾은 나의 호기심

이 교서는 인조 3년(1625)에 이중로에게 추증한 것으로 그가 죽은 뒤에 내린 것이다. 이중로(1577∼1624)는 개국공신 이지란의 후손으로 이괄의 난 때 이성부와 함께 예성강 상류인 마탄에서 전사하였다. 16살 되던 해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선전관이 되었고, 광해군 13년(1621)에는 이천부사가 되었다. 인조 1년(1623)에 인조반정에 참가하여 정사공신 2등에 임명되어 청흥군으로 봉해졌다.

교서에는 이중로의 초상을 그려 후세에 길이 남기고 관직을 2계급 올려주었고, 또한 부모, 처자에게도 마찬가지로 2계급 올려주었으며, 큰아들에게는 이중로가 누리던 벼슬의 지위를 영원히 세습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그리고 관에서 일하는 노비와 공신에게 내리는 노비 등을 합쳐 19명의 노비, 밭 80결, 은 30량, 옷감 1단, 말 1필 등을 내리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 교서는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신에 대한 포상의 내역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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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의 확장

김사현_답사보고서_2018-1

원균 선무공신교서에서 출발한 나의 호기심은 임진왜란때 활약한 원균과 그의 공을 치하하는 목적인 선무공신이라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선무공신을 좀 더 살펴보니 원균 외에도 이순신, 권율 등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충청남도 아산시현충사에 있는 것을 확인 했고, 현충사에는 그가 쓴 난중일기가 소장되어 있었다.

한편 선무공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호성공신이 있다. 임진왜란인 끝나자 선조임진왜란 때 공적을 세운 장군 및 관리에게 그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공신교서를 내리고 상을 내렸는데 그때 크게 선무공신호성공신으로 나누었다. 선무공신은 무(武)로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을 치하하기 위한 것이고 호성공신은 임금인 선조 주변에서 선조를 보위하며 공을 세운 것이었다.

호성공신으로는 심대 라는 인물이 있었으며, 심대가 받은 심대 호성공신교서가 마침 경기도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심대의 묘용인시 처인구에 있었고, 원균의 묘평택시 도일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식노드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원균_선무공신교서 원균 A는_B를_언급하였다
원균_선무공신교서 선무공신 A는_B와_관련이있다
경기도_박물관 원균_선무공신교서 A는_B의_소장처이다
원균 선무공신 A는_B와_관련이있다
이순신 선무공신 A는_B와_관련이있다
권율 선무공신 A는_B와_관련이있다
원균 선조 A는_B와_관련이있다
이순신 선조 A는_B와_관련이있다
권율 선조 A는_B와_관련이있다
이순신 아산_현충원 A는_B에_제향되었다
난중일기 이순신 A는_B가_저술하였다
아산_현충원 난중일기 A는_B의_소장처이다
선무공신 호성공신 A는_B와_관련이있다
공신교서 원균_선무공신교서 A는_B를_포함한다
공신교서 심대_호성공신교서 A는_B를_포함한다
심대_호성공신교서 호성공신 A는_B와_관련이있다
경기도_박물관 심대_호성공신교서 A는_B의_소장처이다
심대_호성공신교서 심대 A는_B를_언급하였다
원균의_묘 원균 A는_B의_묘이다
심대의_묘 심대 A는_B의_묘이다

참고자료


  1. 청흥군이중로정사공신교서, 문화재 검색,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