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 답사보고서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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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문학 콘텐츠

박물관에서 찾은 나의 호기심

박민정 입조일기.jpg


「입조일기 入朝日記」는 조중회(趙重晦 1711~1782)가 45년간 관직생활을 하면서 쓴 일기이다. 「입조일기」는 본래 2책이었으나, 현재는 1권만이 남아있고, 이를 바탕으로 아들이 필사하여 정리한 「선고입조일기」가 완본으로 남아있다. 「선고입조일기」는 1권인 1736년~1761년까지의 일기와 2권인 1762년~1780년까지의 일기, 그리고 2권 말미의 천력(踐歷)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관료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인데 저자 자신이 당쟁의 중심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상황을 매우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45년간의 오랜 기간 동안 기록된 일기는 드물며, 더욱이 관직생활 일기는 예가 매우 드물어 그 자체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호기심의 확장


선고입조일기에서 출발한 나의 호기심은 이 일기의 주요 내용인 관료로 확장되었다.조선시대의 관료에 대해서 알아보니 관료는 문관무관 두 종류로 나뉘었다. 문관은 일반적으로 행정사무에 종사하는 관료이고 무관은 일반적으로 군사일에 종사하는 관료를 말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문관이 무관보다 더욱 우대받았다고 한다.

선고입조일기를 쓴 저자 조중회는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선조인 생육신 조려(趙旅)의 기상을 이어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영조의 빈번한 사묘(私廟) 참례,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죽게 한 처분 등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였다. 1781년부터 이듬해 죽을 때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 충렬서원의 제32대 원장을 지냈다.

나는 선고입조일기외에도 조선시대의 다른 일기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대표적인 일기로는 일성록승정원일기 등이 있었다. 일성록은 1760년(영조 36)부터 1910년(융희 4)까지 약 150년간 조선의 역대 임금의 언동(言動)을 날마다 기록한 책으로 국보 제153호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조가 세손(世孫)으로 있을 때인 1752년(영조 28)부터의 언행과 동정을 일기체로 적고, 그가 왕위에 오른 지 3년 후(1779)에 규장각을 설치하여 각신(閣臣)들로 하여금 왕이 조정에서 행한 갖가지 사실들을 기록하게 하였다. 이것을 자료로 하여 1783년부터 작성을 시작해 1785년 1월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성록이 처음으로 편찬되었다. 하지만 왕실의 권위와 왕권에 방해가 되는 기록을 의도적으로 수정하거나 빼어버리기도 해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에 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文書)와 사건을 기록한 일기이다. 이 일기의 작성은 승정원주서(注書)와 가주서(假注書)의 소임으로, 한 달에 한 권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건이 많을 경우에는 2권 이상으로도 작성하였으며, 반드시 그 다음달 안으로 완성하여 보존하였다. 원래 조선 개국 초부터 일기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어 1623년(인조 1)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270여 년간의 일기만이 현존한다. 영조 22년(1746) 일기청이 설치되어 승정원일기의 개수작업에 착수하였다. 일기청은 개수를 위해 조보(朝報)를 비롯해 각 사(司)의 일기ㆍ등록 등 기본 사료와 관인의 일기문집 등을 널리 이용해 만전을 기하였다. 그리하여 이듬해 말에 548책의 개수를 완료하였다.


지식노드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경기도_박물관 선고입조일기 A는_B의_소장처이다
관료 선고입조일기 A는_B의_내용이다
조중회 선고입조일기 A는_B의_저자이다
조중회 용인 A는_B에_거주했다
일성록 선고입조일기 A는_B와_관련있다
승정원일기 선고입조일기 A는_B와_관련있다
일성록 유네스코 세계유산 A는_B로_등재되었다
승정원 승정원일기 A는_B를_기록했다
일기청 승정원일기 A는_B를_기록했다
규장각 일성록 A는_B를_기록했다
영조 규장각 A는_B를_만들었다
임진왜란 승정원일기 A때_B가_소실되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