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주 답사보고서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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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문학 컨텐츠

박물관에서 찾은 나의 호기심

책가도 혹은 책거리라 칭해지는 그림은 책은 물론 각종 골동품이나 문방구, 화훼 등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책가도는 조선 후기에 궁중이나 상류계층에서 크게 유행하여 제작되었다. 현재까지 전하는 책가도를 살펴보면 대부분 책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각종 진귀한 기물들을 곁들여 배치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실제 현존하는 유물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책가도의 특징상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각종 기물들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책가도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양상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 역할을 한다.[1]

호기심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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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가도는 문헌 기록에 의하면 정조대(1776-1800)에 궁중화원들에 의해 활발히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문을 중시 여겨 책을 가까이 했던 정조의 취향과 맞물려 제작되었던 책거리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책가'와 '책거리'라는 단어는 정조대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자비대령화원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의 호기심은 정조 7년(1783)에 정비된 자비대령화원제로 확장되었다. 자비대령화원제는 서화 관련 정책으로 소수 정예의 화원만을 국왕 직속의 궁정화원으로 특별관리하여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자비대령화원제는 화원들의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시험을 실시했는데, 그 중 책가도 분야도 포함된다.[2] 도화서화원이 중앙 관청에 소속되어 궁궐과 나라에 관련된 일을 하는 화원이었다면 자비대령화원은 왕이 곁에 두고 직접 부리는 화원이다. 자비대령화원은 왕과 규장각 신하들이 특별 시험으로 뽑은 최고의 화가였다. 열 명 미만을 뽑아 관리하고 후원하였는데 이들의 활동은 고종 때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언제든지 왕이 부르면 달려갈 수 있도록 '차비'를 하고 기다리라는 뜻으로 '차비대령화원'이 맞으나 궁중에서는 거센소리를 피해 자비대령화원으로 불렀다. 닭과 고양이를 잘 그린 변상벽, 초상화의 대가 이명기, 산수화의 이인문, 인물 풍속화의 김홍도, 김득신, 유숙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모두 자비대령화원이었다.[3] 정조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책가도 그림은 현재 전하는 유물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정조가 책거리의 의미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더라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책이 가득 꽂혀있는 서재가 연상되는 모습으로 추정된다.

이는 책 이외에도 각종 화려한 기물들이 함께 그려지는 19세기 책가도와는 다른 형식이다. 19세기 책가도는 동시기 청나라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다보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대의 다보격은 다양한 구조로 제작된 상자에 기물을 소장하는 형태와 찬장에 기물을 진열하여 완상하는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청대의 다보격문화는 조선으로 유입되었고, 외국 문물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했던 정조나 북학의 분위기로 인해 조선 사회에 빠르게 흡수되었다.



장한종의 책가도

장한종-책가도.jpg

장한종(張漢宗, 1768~1815 이후)책가도는 현존하는 책가도 중 가장 이른 사례로 꼽히는 작품이다. '쌍희(囍)자' 문양을 새긴 휘장에 둘러싸인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노란 휘장을 걷어 올리면서 책가의 위용을 드러내 보이게 하는 극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걷어 올려진 노란 휘장 안으로 모두 8칸에 각각 4~5단의 층을 이루는 책꽂이가 있고, 그 위에 책, 중국산 도자기와 옥기, 청동기 유물, 문방구, 과일, 꽃 등이 배치되어 있다. 책과 함께 진열된 장식품은 당시 청나라에서 수입한 다채색의 분채 자기나 문방구류가 대부분이다. 서양 회화의 영향을 받아 유행한 선투시도법의 공간에 음영법까지 표현되어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소에 달린 구슬 장식에는 하이라이트까지 표현하여 서양화법에 대한 장한종의 이해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책가의 칸막이와 휘장에도 곳곳에 음영으로 입체감을 내었다. 왼쪽 제1폭 아래 부분 휘장과 칸막이 틈새로 보이는 인장함의 도장에 '장한종인張漢宗印'이라 그려 넣어 작가를 밝혔다. 책가도에 은인隱印이 있는 경우는 화원 이형록(李亨祿, 1808~1883 이후)이 알려졌으나 이보다 앞서 장한종이 이 방법을 선행하였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4]

지식노드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경기도_박물관 장한종의_책가도 A는_B의_소장처이다
장한종 이형록 A는_B와_관련이있다
장한종 책가도 A는_B를_제작하였다
장한종 자비대령화원제 A는_B에_소속되었다
장한종 정조 A는_B와_관련이있다
이형록 책가도 A는_B를_제작하였다
이형록 자비대령화원제 A는_B에_소속되었다
이형록 정조 A는_B와_관련이있다
정조 자비대령화원제 A는_B를_제작하였다
정조 책가도 A는_B와_관련이있다
정조 도화서화원 A는_B와_관련이있다
정조 조선 A는_B의_왕이다
정조 청나라 A는_B와_관련이있다
자비대령화원제 책가도 A는_B를_포함한다
자비대령화원제 조선 A는_B의_제도이다
도화서화원 조선 A는_B와_관련이있다
조선 청나라 A는_B와_관련이있다
다보격 청나라 A는_B의_문화재이다
다보격 책가도 A는_B와_관련이있다
책가도 청나라 A는_B와_관련이있다
책가도 조선 A는_B의_문화재이다
변상벽 자비대령화원제 A는_B에_소속되었다
이명기 자비대령화원제 A는_B에_소속되었다
이인문 자비대령화원제 A는_B에_소속되었다
김홍도 자비대령화원제 A는_B에_소속되었다
김득신 자비대령화원제 A는_B에_소속되었다
유숙 자비대령화원제 A는_B에_소속되었다

참고 자료

  1. 책가도, 문화재 검색, e뮤지엄
  2. 자비대령화원제, 회화 검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차비대령화원제, 조선 화원의 하루, 문학동네
  4. 장한종의 책가도 병풍, 경기도 박물관, Google Arts&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