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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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위키 기사 목록

기사 제목 담당 관련 기사
나석주의사 동상 나석주, 의열단, 동양척식주식회사투탄의거, 동양척식주식회사, 김창숙
구 서울특별시청사 김유진 서울광장, 경성부, 한강의 기적, 서울올림픽대회, 서울도서관, 르네상스양식, 등록문화재,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서울 명동성당 성민지 명동성당, 고딕양식, 박종철, 김수환, 본당, 꼬스트홀
명동예술극장 신명은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양식, 명치좌,오빠는 풍각쟁이, 명동국립극장, 대한투자금융, 명동국립극장 되찾기 운동, 명동상가번영회, 명동 예술극장 재개관, 국립극단
주한 중국대사관 이래현 수교의정서, 사드, 명동 상권
서울 구 미국문화원 이윤서 미쓰이 물산, 그레뱅 뮤지엄, 미국 문화원,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2.12 총선, 한류, 모더니즘, 동양척식주식회사
서울 한국은행 본관 조현화 일본 제일은행, 조선식산은행, 조선총독부, 조선은행, 화폐정리사업, 백동화, 조선 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중앙은행, 르네상스양식
환구단 성민지 환구단, 제천의식, 대한제국, 고종, 조선호텔, 광무개혁
은성주점 터 김유진 박인환, 이봉구
혜민서 터 이래현 혜민서, 의녀, 허준, 제생원, 커피한약방, 마의
윤선도 집터

개인별 콘텐츠 기획 내용

김유진

답사를 다녀온 명동의 많은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들 중 저는 ‘구 서울특별시청사’를 맡아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관련된 항목들은 총 6개로 서울광장, 경성부, 한강의 기적, 서울도서관, 르네상스 양식, 등록문화재입니다. 구 서울특별시청사는 1926년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해 경성부청사로 건립되어 광복 때까지 사용된 관공서 건물입니다. 이후, 1946년부터 서울시청사로서 사용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현대사가 함께 담겨있는 역사의 현장이며 이후, 신청사 건립에 따라 현재 서울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며 등록문화재 제 52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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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지

저는 '명동성당'과 '환구단'에 대해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명동성당, 고딕양식, 박종철, 김수환, 본당, 꼬스트홀, 환구단, 고종, 조선호텔, 대한제국, 제천의식, 광무개혁에 대해서 기사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명동성당은 서울시 중구 명동에 있는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입니다. 프랑스 신부 코스트가 설계하여 1898년에 완성된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교회당 건물입니다. 이곳은 명동천주교당, 과거에는 종현성당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또한 이곳은 한국 최초의 본당이기도 합니다. 건축 양식은 대부분의 서양의 성당과 같은 고딕양식입니다.1970년대 수많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중심에는 명동성당이 있었습니다. 명동성당은 종교시설이라는 특성상 경찰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고, 따라서 이곳은 강압적인 정권에 맞서 싸우는 운동가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소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피신처였습니다.김수환 추기경은 항상 명동성당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10.26 이후 들어선 군부독재와 5공화국 체제에서도 김수환 추기경은 독재를 비판하는 날선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명동성당의 2층에 있는 꼬스트홀은 2002년에 만들어졌고 이는 명동대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 신부의 이름을 따 개관했습니다. 지난 4개월간 증개축 공사를 마치고 2017년 5월에 재개관하는 꼬스트홀은 종교를 초월해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문화 공연장과 학술 행사장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두번째 장소인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이곳에서 제천의식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은 수립과 함께 사용했던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이 연호를 따서 실행된 개혁이 광무개혁입니다. 광무개혁은 1897년부터 실시 되어 1904년 러ㆍ일 전쟁이 발발하며 중단되었습니다. 결국 1913년 일제에 의하여 환구단이 헐리고 그 터는 지금 조선호텔이 되었는데,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팔각정의 황궁우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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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은

저는 명동 위키 콘텐츠 제작에서 명동예술극장을 맡았습니다. 관련기사들은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양식, 명치좌,오빠는 풍각쟁이, 명동국립극장, 대한투자금융,명동상가 번영회, 명동국립극장 되찾기 운동, 명동예술극장의 재개관, 국립극단입니다. 명동예술극장의 초기 이름은 명치좌 입니다. 명치좌는 근대 건물양식으로, 르네상스양식바로크양식을 모두 혼합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명치좌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지나서 62년도에 명동국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10여년간 국립극장으로서 여러가지 연극, 오페라, 무용등을 열게 됩니다.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빠는 풍각쟁이입니다. 그러나 75년에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되어 금융업체 기업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94년 명동상가번영회명동국립극장 되찾기 운동을 벌였고, 이에 200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건물과 땅을 사들여 2009년에 명동 예술극장 재개관 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국립극단으로서 여러 공연을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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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현

저는 이번 명동 위키에서 주한 중국대사관혜민서 터를 맡았습니다. 먼저 주한 중국대사관은 대한민국과 중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외교의 역사를 알아볼 필요성을 느껴 한중 국교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수교의정서를 조사했습니다. 수교의정서를 채택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고 실제로 국교가 수립된 이후에는 현재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외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도 더불어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표를 통해 연도별로 보기 쉽게 정리해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한중관계에 대해 조사하던 중 최근 사드로 인해 한국과 중국 간의 관계에 또 다른 양상이 보이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의 현재 주목되고 있는 시사점인 사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사드가 중국 관광객들의 명동 상권에 미치는 영향에도 변화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동 상권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황에 대해서도 살펴보았고 최근 중국 관광객들의 감소로 인한 경제적인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다음은 혜민서 터입니다. 혜민서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그 터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혜민서의 역할과 구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조선시대의 의학보건 기관이었던 혜민서에는 의녀라는 직위의 여성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그 당시의 의녀들의 역할과 그들의 삶, 그리고 의녀의 계급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장금과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인 의녀라는 사실을 알고, 대장금 외에 의녀가 등장하는 프로그램 중 2012~2013년 방영했던 MBC드라마 마의에 대해 알아보게되었습니다. 또한 혜민서에 소속되어 업적을 세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허준에 대해서도 기사를 작성해보았습니다. 혜민서에 뒤늦게 귀속되었지만 조선 초중기에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제생원이라는, 혜민서와 같은 의료보건 기구로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을 조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거 혜민서가 위치했던 장소에 커피한약방이라는 커피숍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커피한약방의 고전적인 분위기와 혜민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혜민당이라는 과자점이 인상깊어 이 곳에 대해서도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이윤서

저는 명동 위키 제작에서 ‘서울 구 미국문화원’을 맡아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기사 작성에 앞서 ‘어떻게 하면 위키를 보다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하였습니다. 저는 이 고민에 대한 해답으로 ‘시간에 따른 서울 구 미국문화원의 변화’라는 컨셉을 잡았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은 보편적이고 지루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 구 미국 문화원의 경우,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기에 따라 주요 기관이 위치해있던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근대사를 이 건물을 통해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선, 시간에 따른 분류이기 때문에 1차적 노드는 각 시대의 건물 사용 주체로 선정하였습니다. 첫번째로 일제 강점기 당시 건물을 짓고 사용했던 ‘미쓰이 물산’, 민주화 운동 시기 사용했던 ‘미국 문화원’, 마지막으로 현재 사용 중인 ‘그레뱅 뮤지엄’을 뽑았습니다. 또한 건물 자체인 ‘서울 구 미국문화원’을 추가하였습니다.

2차적 노드로는 1차 노드와 관련 있는 항목들로 구성하였습니다. ‘미쓰이 물산’의 경우, 일제 강점기 시대 전범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이와 관련된 다른 전범 기업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선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두 노드를 통해 일제 강점기 시대 활동했던 전범 기업들의 특징과 현재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점들을 도출해내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서울 구 미국문화원’을 배경으로 하는 사건입니다. 이외에도 부산, 광주 등 각지에서 미국 문화원을 점거, 방화하는 사건이 존재합니다. 저는 서울에서의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을 주로 하나 다른 지역의 미국 문화원 사건들까지 서술하여 당시 왜 미국 문화원이 점거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의 발단인 ‘2.12 총선’을 노드로 추가하여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기사로 작성하고 싶습니다. ‘그레뱅 뮤지엄’과 관련된 2차 노드는 ‘한류’와 ‘밀랍 인형’입니다. ‘그레뱅 뮤지엄’이 왜 아시아에서의 첫 진출을 한국으로 택했는지 설명해주는 것은 ‘한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밀랍 인형‘의 경우 생소하지만 새로운 문화적 대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레뱅 뮤지엄‘의 전시 대상이기에 선정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건물과 관련된 노드로 ’모더니즘‘을 선택하였습니다. 건물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해당 건물의 양식이며, 왜 모더니즘으로 지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은 건물의 역사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풍부한 내용이 가능할 것 같아 택하였습니다.

<노드 분류>
장소 단체 사건 개념 물건
서울 구 미국문화원 미쓰이 물산

동양척식주식회사

미국 문화원

그레뱅 뮤지엄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2.12 총선

모더니즘

한류

밀랍인형


조현화

명동을 답사한 후 저는 '서울 한국은행 본관'에 대해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들은 일본 제일은행, 화폐정리사업, 화폐박물관, 중앙은행, 르네상스 양식,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조선총독부, 백동화, 조선 엔입니다. 한국은행 본관은 한국 최초의 은행 건물입니다. 1908년 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처음 시공되었습니다. 하지만 1년 후 창설된 한국은행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의 업무를 인수하면서 서울 한국은행 본관이 되었습니다. 1905년부터 1909년까지 일제의 주도로 대한제국 내의 백동화엽전을 정리하고 상업은행인 일본 제일은행이 발행한 화폐인 조선 엔으로 대체하는 화폐정리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제국에 의해 금융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의해 병합됨에 따라 1911년 3월 공포된 조선은행법에 따라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은행으로 재출범했습니다. 또한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조선은행은 1945년 일제 패망 후 한국은행 설립 전까지의 과도기에 38선 이남에서 대한민국중앙은행 및 상업은행으로서의 업무를 계속 수행하다가, 한국은행법에 따라 1950년에 설립된 현재의 한국은행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유럽 성관풍의 르네상스양식입니다. 1987년 건물 후면에 한국은행 신관(현 본관)이 준공되면서 이 건물은 2001년 부터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노드 분류>
장소 인물(단체) 사건 개념 물품
서울 한국은행 본관

화폐박물관

일본 제일은행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조선총독부

화폐정리사업 중앙은행

르네상스양식

백동화

조선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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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및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