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말레 답사보고서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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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문학 콘텐츠

박물관에서 찾은 나의 호기심

송이제학유금강시.jpg

송이제학유금강시(送二提學遊金剛詩-청송심씨 응교공파 기증)

정조의 어필로 추정되는 시작(詩作)으로 심환지가 금강산에 유람을 떠날 때 송별의 감회를 적은 것이다. [심환지가장]에 의하면 1798년 8월 심환지가 금강산으로 떠날 무렵 정조가 돈유문[1]에 해당하는 한편의 시를 보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필체가 호방하며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호기심의 확장

정조가 유람을 떠난 우의정 심환지에게 쓴 돈유문인 송이제학유금강시에서 시작된 나의 호기심은 이 유물에서 미루어볼 수 있는 당시 정조와 그의 우의정이었던 심환지 사이의 관계에 이르렀다.
정조초상화
심환지초상화-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심환지]는 철저한 노론계 인물로서, 신임의리(辛壬義理)를 고수하였고,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벽파의 영수를 지냈으며 [승정원 일기]에 2954건 정도가 기록되어있는 인물이다.
  • 2009년에 공개된 사료 정조어찰첩[2]의 서찰내용에 따르면 정조심환지와 비밀리에 아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정치적 노선이 서로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생해야할 존재로 인정했으며 스스로 사직을 하겠다는 심환지의 사직서를 되려 반려하는 등의 흥미로운 모습을 보였다. 한편 정조2년 11월 3일, 폭죽은 고례[3]이나 놀이에 불과하고, 또한 그 비용이 많이 든다는 특료[4]를 내려 폭죽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 정조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을 건설했고, 이 수원화성을 쌓는데 이용된 거중기정약용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
  • 정조5년, 정월대보름의 상징이었던 아이들의 체용놀이(채용치기)를 금지한 입직 관원을 추문하기도 하였다.[5]
  • 정조5년 9월3일, 김홍도는 정조 어용의 초본을 그렸다고 기록되어있다.


송이제학유금강시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정조 송이제학유금강시 A는_B를 편찬하였다
정조 정조어찰첩 A는_B를 보냈다
정조 사직서 A_는B를 거절했다
심환지 승정원일기 A는_B에 기록되었다
김홍도 정조 A는_B를 모사했다
수원화성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A는_B이다
정약용 거중기 A는_B를 만들었다
수원화성 거중기 A는_B로 만들었다
심환지 노론 A는_B의 대표이다

지식노드

  • 인물

정조 심환지

김홍도 정약용

  • 문화유산

송이제학유금강시 수원화성 거중기 정조어찰첩 승정원일기

  • 개념

노론 우의정 좌의정 정월대보름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각주

  1. 왕이 신하에게 전하는 말씀
  2. <정조 어찰첩>은 정조가 1796~1800년 사이에 좌의정 등 고위직을 역임한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로 300통에 달하는 다양한 내용의 어찰이 6첩으로 장첩되어 있다.
  3. 옛부터 내려온 습관이 된 전례
  4. 임금이 내리는 특별명령
  5. [1]노컷뉴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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