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답사보고서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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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문학 콘텐츠

박물관에서 찾은 나의 호기심

백자양각모란문주자(백자 모란무늬 주전자)

백자양각모란문주자(백자 모란무늬 주전자)는 금속기형의 풍만한 몸체에 넝쿨을 꼬아 만든 모양의 두터운 손잡이가 달린 백자주자로,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 조선의 백자를 대표하는 유물로 전시되어 있다. 손잡이는 넝쿨을 꼬아 놓은 모습이고 뚜껑의 꼭지는 식물의 가지모양을 본떠서 만든 아름다운 조형의 주전자로, 모란문이 양각으로 몸체와 뚜껑위에 새겨져 있다. 이는 부조식(浮彫式)으로 시문하는 것이 아니고 첩화식 또는 백토를 짜내어 태토위에 시문하고 여기에 다시 예리한 음각도구로 세부문양을 시문한 것이다.뚜껑의 꼭지가 식물 가지모양으로 되어있는데 전체적인 형태와 잘 어울려 독특한 조형미를 풍긴다. 유색은 푸른기가 있는 설백색인데 태질이 매우 희고 단단하며 잡티가 없이 표면이 깨끗하다.문양이 아름답고 전체적인 조형이 우수한 분원에서 만들어진 갑기(분원갑기,分院匣器)의 대표적인 우수한 작품이다.

조선의 백자는 고려시대의 백자를 바탕으로 중국 경덕진(징더전) 백자의 영향을 받아 처음으로 만들게 되었다. 초기에는 백자가 소량의 최상품만 생산되었기 때문에 왕실의 그릇으로 채택해 왕실에서만 사용했지만, 조선 후기 백자의 생산이 활성화되면서 민간에 까지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이 백자양각모란문주자(백자 모란무늬 주전자)는 조선시대 19세기에 만들어진 백자로, 백자가 대중화된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의의가 있다.[1]

호기심의 확장

백자양각모란문주자(백자 모란무늬 주전자)에서 출발한 나의 호기심은 백자에 사용된 모란문과, 백자가 조선 후기에 일반 백성들에게 유행했다는 이야기에서 조선시대 일반 백성의 생활 모습로 확장되었다. 모란문은 모란을 소재로 나타낸 장식 무늬로, 모란은 일찍이 아름다움으로 시와 고사(故事)에 늘 등장하고, 국색 천향(國色天香)의 자색으로서 꽃 중의 꽃으로 알려져 있다.모란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서 선덕여왕조에, 당시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홍색·자색·백색꽃의 모란 그림과 씨앗 서 되를 보내 왔다고 적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부터 모란 무늬를 본격적으로 사용했고, 고려시대부터는 자유롭게 그려 회화적이고 여러가지 기법에 의한 추상화된 모란 무늬를 사용했다. 모란은 화목과 공명, 그리고 부귀영화를 상징하기 때문에 선비들의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을 그렸고,부귀를 기원하는 순박한 소망의 발현으로 각종 집기에도 모란 무늬를 그려넣었다. 또한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 왕비나 공주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는 모란무늬를 수놓기도 했다. 조선시대 순조(재위 1800∼1834)의 셋째 공주인 덕온공주가 입었던 당의인 덕온공주당의[2]에서 모란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덕온공주당의는 자주색 비단에 금실로 수(壽)·복(福)이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그 자주색 비단에 연한 모란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모란 무늬가 새겨져 있는 집기의 예시로는 청자상감모란문항아리가 있다. 고려청자는 고려시대 9세기 혹은 10세기부터 만들어진 청자로,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 시작한 청자는 몽골의 침입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어려워지자 고려인들이 고려청자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게 되면서 계속 발전을 거듭하여 11세기 말에는 청자의 종류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고려청자는 조선의 백자와는 다르게 일반 백성들은 사용하기 어려웠고,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12세기 전반에는 순청자가 유행했고, 순청자가 발전하면서 상감기법이 새롭게 등장했다.

조선시대 일반 백성의 생활모습은 풍속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풍속화는 인간의 생활상을 그린 그림으로, 좁은 의미로는 민간의 생활상을 다룬 그림을 말하기도 한다.풍속화는 사대부의 생활상을 그린 사인풍속도(士人風俗圖)와 일반 백성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다룬 서민풍속도(庶民風俗圖)로 분류할 수 있다.사인풍속도를 그린 화가로는 신윤복이 있다. 신윤복은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로, 양반층의 풍류와 남녀 간의 연애, 기녀와 기방의 세계를 도시적 감각과 해학으로 펼쳤다. 그의 작품인 쌍검대무는 세력 있는 귀족이 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들과 가무에 능한 기생을 불러다가 즐기는 장면이다.작품을 볼 때 놀이의 규모가 엄청난 것으로 보아 일가의 세도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서민풍속도를 그린 화가에는 김홍도가 있는데, 김홍도는 조선시대의 화가로 영조,정조의 문예부흥기부터 순조 연간 초기에 활동했다. 산수/ 인물/ 도석/ 불화/ 화조/ 풍속 등 모든 장르에 능하였지만,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자리짜기는 한국 특유의 공예작물인 왕골을 만드는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식노드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백자양각모란문주자 모란문 A는_B를_사용하였다
백자양각모란문주자 조선시대 민중들의 생활 A는_B를_보여준다
분원 백자양각모란문주자 A는_B의_제작장소이다.
경기도_박물관 백자양각모란문주자 A는_B의_소장처이다
모란문 덕온공주당의 A는_B에_사용되었다
덕온공주당의 덕온공주 A는_B와_관련이있다
덕온공주 순조 A는_B와_관련이 있다
모란문 청자상감모란문항아리 A는_B에_사용되었다
청자상감모란문항아리 고려청자 A는_B에_속한다
청자칠보투각향로 고려청자 A는_B에_속한다
고려청자 순청자 A는_B를_포함한다
고려청자 몽골의 침입, 무신정변 A는_B의_영향을 받았다
상감기법 고려청자 A는_B에_사용되었다
청자상감모란문항아리 청자칠보투각향로 A는_B와_관련이있다
풍속화 민중의 생활 A는_B를_보여준다
사인풍속도,서민풍속도 풍속화 A는_B의_종류이다
쌍검대무 신윤복 A는_B의_작품이다
사인풍속도 쌍검대무 A는_B를_포함한다
자리짜기 김홍도 A는_B의_작품이다
김홍도 영조,정조 A는_B시대_활동화가이다
서민풍속도 자리짜기 A는_B를_포함한다

참고자료


  1. 백자양각모란문주자 유물 검색, 경기도 박물관
  2. 덕온공주당의문화재 검색, 문화재청